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팀이 양자 물질에서 액정과 유사한 물질 상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다. 이리듐 산화물에서 발견된 이 물질 상의 이름은 ‘스핀 네마틱’으로, 스핀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지 않고 네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는 상태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스핀 액체 탐색과 고온 초전도체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목차
사각격자 이리듐 산화물 Sr2IrO4는 저온에서 자기 쌍극자 질서를 가짐은 잘 알려져 있다. 본 연구에서는 저온(오른쪽)에서 이 쌍극자(화살표)가 사극자(도넛) 질서와 공존하며, 자기 전이온도 230 K 위에서 쌍극자가 사라져도 사극자가 여전히 임계온도 263 K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쌍극자 없이 사극자가 존재하면 스핀 네마틱이라고 할 수 있다. 사극자의 스핀 확률 밀도함수는 도넛 모양이 된다.
사각격자 위에서 스핀들은 단순한 자기구조(Classical AF) 뿐만 아니라, 양자효과를 통해 단일항 중첩상태(Resonant Valence Bond; RVB) 및 양자 요동 자기구조(Quantum AF) 등의 다양한 상태를 가질 수 있다. 이 중 스핀 쌍극자와 사극자가 공존하는 상태(Canted AF + Quadrupoles)를 직접 관측해 낸 것은 본 연구가 최초다.
양자 세계서 ‘액정’ 같은 물질 발견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 김범준 부연구단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양자 물질에서 액정과 유사한 물질 상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다.
대부분 물질은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상으로 존재한다. 액정을 포함한 제4의 상인 ‘네마틱’은 액체와 고체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다. 액체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고체처럼 분자의 배열이 규칙적이다. 네마틱 상이 양자역학적인 스핀계에서도 존재할 것이라는 이론적 예측은 반세기 전부터 있었지만, 실제 물질에서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스핀 네마틱 이란?
스핀은 전자의 각운동량이다. 전자의 운동을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에 비유할 때, 스핀은 자전에 해당한다. 자석은 스핀이 한 방향으로 정렬된 고체 상태다. 자석에서 스핀은 자석의 N극과 S극이라는 두 개의 극으로 이뤄진 자기 쌍극자를 형성한다. 반면, 스핀 네마틱은 자성은 없지만 네 개의 극으로 이뤄진 사극자가 정렬되어 있는 상태다.
연구 방법
연구진은 사극자의 존재를 빛(X선)을 이용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장비를 설계했다. 우선, 연구진은 미국 아르곤연구소와 협업하여 공명 비탄성 X선 산란 장비(RIXS)를 4년여에 걸쳐 개발했다. 이후 포항가속기연구소 등 가속기 빔라인에 개발한 분광기를 구축하여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연구진은 유력 고온 초전도체 후보물질로 꼽히는 이리듐 산화물(Sr2IrO4)에 X선을 조사하며 스핀의 거동을 관찰했다. 이리듐 산화물은 230K(-43.15℃) 이하의 저온에서는 쌍극자와 사극자가 공존했지만, 260K(-13.15℃)의 온도까지는 쌍극자가 사라져도 사극자가 남아있었다. 230~260K의 온도 범위에서 스핀 네마틱 상태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연구 성과
스핀 네마틱 상의 발견은 물리학자들의 숙원 과제인 스핀 액체 탐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공동 저자인 조길영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컴퓨터 등 양자 정보 기술에 활용하기 위해 학계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스핀 액체를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며 “스핀 네마틱은 스핀 액체와 공통적인 물리적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스핀 액체 탐색의 핵심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이번 연구는 이리듐 산화물에서 고온 초전도 상이 존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의미도 있다. 이론적으로 스핀 네마틱 상도 스핀 액체처럼 스핀 양자 얽힘을 통해 고온 초전도 현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에서 이리듐 산화물의 전자 농도를 변화시켜가며 고온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지 조사해 볼 계획이다.
김범준 부연구단장은 “RIXS는 양자 간섭을 통해 스핀 상호작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엑스선 과학 분야에서 지난 10년 간 가장 주목받은 기술 중 하나”라며 “이번 연구는 국내 방사광 X선 실험 인프라 및 활용 능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12월 14일(한국시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IF 64.8) 온라인판에 실렸다.
연구 의의
이번 연구는 양자 물질에서 새로운 물질 상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의의가 크다. 또한, 스핀 액체와 고온 초전도체 연구에 새로운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실용적 의의도 크다.
특히, 스핀 네마틱은 스핀 액체와 공통적인 물리적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핀 액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스핀 양자 얽힘을 기반으로 하는 고온 초전도체 개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연구 추가 설명
논문명/저널명
Quantum spin nematic phase in a square-lattice iridate/ Nature(2023)
저자정보
Hoon Kim, Jin-Kwang Kim, Junyoung Kwon, Jimin Kim, Hyun-Woo J. Kim, Seunghyeok Ha, Kwangrae Kim, Wonjun Lee, Jonghwan Kim, Gil Young Cho, Hyeokjun Heo, Joonho Jang, C. J. Sahle, A. Longo, J. Strempfer, G. Fabbris, Y. Choi, D. Haskel, Jungho Kim, J. -W. Kim & B. J. Kim
연구내용 보충설명
[스핀 네마틱] 물리학에서 상전이는 대칭성 붕괴로 기술된다. 예를 들어, 액체에서 고체로 상전이가 일어날 때 병진대칭성과 회전대칭성이 깨진다. 다시 말해, 액체는 임의의 축에 대해 임의의 각도로 회전했을 때, 혹은 임의의 방향으로 임의의 거리만큼 이동시켰을 때 원래 상태와 구분 불가능하지만, 고체가 되면 원자가 주기적인 배열을 이루기 때문에 회전 전후의 상태가 다르다.
이 고전 역학적인 개념을 양자역학적인 스핀 계로 확장해보자. 먼저 스핀 계에서 고체 상태란 스핀이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때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스핀의 방향도 바뀐다.(이는 스핀을 지구의 자전 운동에 비유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지구가 반대로 돈다.) 이를 물리학 용어로 시간반전대칭성이 깨진다고 말한다. 동시에 회전대칭성도 깨진다. 스핀이 특정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핀 네마틱이라는 상에서는 회전대칭성은 깨지지만 시간반전대칭성은 깨지지 않는다. 스핀이 액체에서처럼 정렬되지 않고 시간에 따라 이리저리 가리키는 방향이 달라지지만, 특정 방향을 회피하려는 성질에서 회전대칭성이 깨진다. 하지만, 그 방향을 뒤집어도 원래 상태와 구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반전대칭성은 유지된다. 이러한 질서의 존재 유무는 스핀 사극자를 측정하여 알 수 있다.
연구 이야기
[연구 과정] 스핀 네마틱 상을 확인하기 위하여 여러 실험 기법들이 동원되었다. 공명탄성X-선 산란이 포항가속기연구소 1C 빔라인, 미국 Advanced Photon Source (APS) 4-ID-D 빔라인에서 수행되었다. 공명비탄성X-선 산란은 미국 APS 27-ID-B 빔라인과 유럽 European Synchrotron Radiation Facility (ESRF) ID20 빔라인에서 수행되었다. 라만실험은 포항공대 실험실에서 수행되었다.
[어려웠던 점] 방사광 실험 대부분에 해당되는 얘기겠지만, 실험 기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 프로포절을 써서 채택이 되면 실험하기까지 최소 6개월에 1년이 걸리고 추가 실험이나 재현성을 확인하려면 이와 같은 절차를 최소 2번 이상 걸친다. 특히 APS 가속기는 현재 업그레이드 때문에 운영이 중지되었는데, 논문 심사위원의 질문에 대응하려면 추가실험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ESRF 가속기에서 보완 실험을 하고 최종 게재 승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성과 차별점] 스핀 액체는 이론적으로 많은 흥미로운 새로운 물리적 성질을 가지고 있고, 양자컴퓨터 등에 활용 가능성 때문에 학계에서 스핀 액체를 찾으려는 노력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스핀 액체는 어떤 측정 가능한 물리량으로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물질이 스핀 액체인지 여부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반면, 스핀 네마틱은 검출이 어렵기는 하지만 사극자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스핀 액체와 공통적인 물리적 성질을 가지므로 스핀 양자 얽힘 등의 현상을 활용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제공한다.
[향후 연구계획] 스핀 네마틱과 스핀 액체가 공히 갖고 있는 스핀 양자 얽힘은 이론적으로 쿠퍼쌍 형성을 매개하여 고온초전도현상을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사각격자 이리듐 산화물에 전자/홀을 도핑하여 전자 농도가 변화함에 따라 스핀 네마틱 질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해 보고 또 고온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지 조사해 볼 계획이다.
출처 : 기초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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